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케인즈 학파 vs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 정부의 대책은 결국 정부지출을 늘려 시중에 돈을 풀고, 이로 인해 경기를 자극한다는 내용입니다. 주류 언론을 보면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거나, 아예 더 강도 높은 예산 지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보면, 특히 이른바 "고수"로 불리는 분들 중엔 이러한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 분들은 정부가 아무리 지출을 늘려도 경제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고, 따라서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나 한국 정부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 집행은 돈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하죠. 그렇다면 왜 하나의 현상에 대해 이처럼 다른 의견이 존재할까요? 이는 경제를 보는 관점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케인즈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견해 차이를 인정해야 지금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전혀 다른 의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케인즈 학파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따릅니다. 케인즈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연구한 결과, 불황기에는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로 인해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부의 지출 확대를 통한 수요의 증가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따라서 케인즈 학파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번 경제위기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케인즈 학파와는 다르게, 오스트리아 학파는 경제학계에서 비주류이고, 또한 일반인에게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죠. 19세기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기에 오스트리아 학파라고 불리는 이 학파는, 2차 대전 이후로는 "미국 학파"라고 해도 될 만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수학 모델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기에 수학 모델을 배제한, 언어 중심의 경제학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경제에서 개인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갑작스럽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인간들의 상호작용인 경제현상을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오스트리아 경제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종이 돈의 가치를 낮게 여기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의 변동이 적은 금을 대단히 중요시 여깁니다.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빚을 내 생활하는 방식을 부정적으로 보고,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는 정부와 개인이 지나치게 빚을 많이 낸 결과로 해석합니다.

케인즈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케인즈 학파는 공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재정지출을 늘려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에 비해 오스트리아 학파는 개인 중심의 경제학이기에, 정부의 개입은 늘 시장을 왜곡하고,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 자체가 경제를 죽인다고 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대해서도 케인즈 학파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중요시하는데 비해, 오스트리아 학파는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결국 실패하리라고 믿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정부의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우파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 학파를 따른다고 모두가 우파는 아니죠). 그런데우파든 좌파든 정치인은 정치가 경제를 좌우할 수 있다고 믿기 마련이고, 따라서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없애기 바라는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치인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오스트리아 학파를 따르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은 올해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던 론 폴인데, 그는 공화당 내에서도 매우 특이한 인물 (어쩌면 존 매케인을 뛰어넘는 진정한 maverick)입니다.

시카고 학파는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 학파와 연관이 깊지만, 오스트리아 학파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대단한 거부감을 보이고,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인 통화량 증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데 비해, 시카고 학파는 (최고한 80년대 까지는) 통화량이 적정 수준으로 증가해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한다고 보는 통화주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시카고 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1929년의 경제대공황은 통화량의 부족 때문이고, 따라서 대공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통화를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FRB 의장인 벤 버냉키는 프리드먼의 대공황 원인분석에 대해 동의하고, 따라서 이번 경제위기도 통화량을 충분히 공급함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경제학계에서 오스트리아 학파는 영향력이 작은 원인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이 주류 경제학과 워낙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리아 학파가 수학적 모델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제대로 된 학문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수학을 통한 증명이 꼭 필요한데, 추상적인 수학 모델로 경제를 설명하길 거부하는 오스트리아 학파는 학계에서 주류로 자리잡기 힘들죠. 그리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니 정치계, 언론계에서도 오스트리아 학파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정부 정책이나 언론의 보도를 보면 "돈을 많이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죠. 하지만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분 중엔 오스트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분이 많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주류 이론이 아니긴 하지만, 케인즈 학파와 시카고 학파가 이번 경제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입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오스트리아 학파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가 파국을 불러올 것을 경고해왔고, 금이야 말로 안전한 가치의 보관수단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경제위기와 금값 상승을 정확하게 예측했기에 더욱 주목을 받는 중입니다. 사실, 종이돈 보다 금을 선호하고, 절약과 저축을 강조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은 21세기보다는 19세기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경제가 과도한 신용거래와 중앙은행의 통화 남발로 위기에 빠졌기에, 19세기의 경제가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앞으로 오스트리아 학파가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을 수 있을찌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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